지방 공무원 점심 같이 먹기 문제
JuneTein
얼마 전에 공무원 하는 친구 얘기를 듣다보니 요즘 젊은 직원들이 같은 팀원들이나 윗 사람들이랑 같이 밥 먹는 것을 엄청 싫어하나봅니다.
서두에 미리 밝히지만, 같이 밥 먹어주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니 나이든 전직 공무원의 생각이 어떤가 알아보고 휙~ 하고 지나가시면 됩니다. 누가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요. ㅎㅎ
아, 그리고 전 지방직 공무원으로 광역시 산하에서 근무를 했었으니 다른 지역, 다른 조직은 잘 모릅니다.
10여년 전에는 어땠냐면, 일단 팀원, 팀장이랑 같이 먹습니다. 동사무소에서는 민원담당이 아닌 경우에는 사무장(팀장), 동장이랑 같이 먹었고요. 조금 규모가 있는 동인 경우에는 팀별로 번갈아가면서 동장님을 모셨습니다.
이 모셨다는 표현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여하튼 그랬습니다.
광역자치단체라도 뭐 다르지 않았는데, 팀 단위로 식사를 하고, 과장님 모시는 날, 국장님 모시는 날 이런게 있었습니다. 우리 과가 국장님 모시는 날은 6급이하 나부랭이(농담)들은 알아서 먹는 날이었죠.
과장 + 팀장급이 모시고 먹었습니다. 과서무가 카드를 주거나 국서무가 카드를 주거나 했고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1. 돈은 누가 내냐
밑에 놈들이 돈을 걷어서 냈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저녁이야 야근하는 사람들 특근매식비로 먹는거니까 별 상관없는데, 점심값은 급여에 정액급식비라는 항목으로 포함되어있죠. 원칙적으로는 이 돈으로 내가 사먹어야 맞습니다.
근데 어떻게 했었냐면, 각과 또는 각동의 직원들이 출장을 갔다오면 출장비로 한 시간 이상은 1만원, 4시간 이상은 2만원을 줬습니다.
그러면 이 돈을 서무가 거두어 갔다가 일부는 과비로 일부는 각 팀별로 나누어 줬습니다. 부족분은 팀별로 알아서 해결하고요.
그러니까 점심값을 내돈내고 먹는다는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부 가난한 부서에서는 밥을 내돈내고 먹었던 기억도 있었지만요.
그러니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냐면, 과장이나 국장님 밥값은 당연히 팀이나 과에서 내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자기돈을 내는게 아니라는 것을 다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뭐 내돈 내고 사준다고 해도 밥 값이 그 때 당시에는 한 끼에 1만원도 안했으니 한 사람당 2~3천원씩 더 낸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이런게 다 없어졌습니다. 출장비 정산도 확실히 하고, 부서마다 다르지만 밥 값도 각자가 내거나 팀서무가 점심값을 얼마씩 걷었다가 지불하기도 하죠. 1/n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요즘에는 과장이나 국장이 밥을 공짜로 얻어먹고 다니면 눈총을 받거나 돈도 제일 많이 받으면서 점심 값도 안낸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2. 그거 안먹고 싶은데
과장이 입맛이 까탈스럽습니다.
아무거나 먹어주면 좋은데, 고기를 안먹는다, 양식은 입에 대질 않는다, 찌개 좋아한다, 등등 특이 입맛이면 서무가 식당 잡는 것도 짜증났습니다.
"드시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라는 질문에 답을 해주는게 차라리 제일 속 편했죠.
지금은 아니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콩나물 국밥"을 먹으러 가는게 저는 제일 싫었습니다. ㅎㅎ
뭔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고, 값이 싼 것도 아니고요. 차로 가야하는 곳이었는데, 운전해서 모시고 가는 것도 짜증났습니다.
팀장님이 입맛이 나랑 안맞으면 젠장 일주일 내내 먹고 싶은 점심을 먹을 수가 없었죠.
UN으로 옮기고 나서는 외국에서 온 직원이랑 점심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라자냐를 먹기도 했습니다. 가끔 한식 먹고 싶을 때에는 한국 직원이랑 김치찌개 먹기도 했고요. 입맛 없는 날에는 혼자 카페에서 샌드위치랑 커피로 때우기도 했습니다. 동시대에 완전 문화가 달랐죠.
공직에 있는 동안, 저는 주사보로 의원면직 했으니, 내내 하급직이었고, 먹고 싶은 점심을 여유롭게 먹었던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고요. 팀장님이나 과장님이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 있었으니까요.
50년대생 과장님한테 모밀국수랑 왕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하기도 좀 그렇잖아요. 평양냉면이면 모를까.
3. 먹고 싶은 자와 안먹고 싶은 자
근평이나 전보가 국장이나 과장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 질 때, 먹고 싶은 자가 있을 수 있고, 승진이나 전보가 전혀 관심사가 아닐 때는 먹기 싫은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격무부서에 있을 때와 선호부서에 있을 때의 입장이 다르고, 힘 있는 상관이냐 힘 없는 상관이냐에 따라 입장이 다르죠.
문제는 팀원 전부가 먹고 싶으면 상관이 없는데, 일부가 안먹고 싶으면 문제가 됩니다.
6급 승진이 임박한 주사보면 인사를 주름잡는 총무국장이랑 안먹고 싶겠습니까? 한 번 밀리면 또 6개월에서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근데 뭐 이제 8급 승진한 20대 직원이 55살 먹은 국장이랑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뭔 할 얘기가 있겠습니까?
제가 7급 갓 승진했을 때 3급 부이사관님이랑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 한 일이 꽤나 있었는데, 서로 할 말이 없던데요. ㅎㅎ
그래도 그 분은 저 신경써준다고 삼계탕 같은 것 먹으러 가곤 했습니다. 몸 보신하라고.
4. 편가르기 그만
제가 얘기를 나눈 사람들이 다 5, 6급들이라 그런지 밥값보다 팀원들 커피사주는 값이 더 들어간다고 푸념을 합니다.
저는 니가 더 버니까 커피 좀 사주라고 하죠. 너랑 먹어주는게 어디냐고. 근데 정작 그 말을 꺼낸 치는 커피를 안마십니다. 음료도 안좋아하고요. ㅎㅎ (노소를 막론하고 사준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합시다.)
저는 완전 꽉막힌 조직에서도 있어봤고, 완전 자유로은 조직에도 있어봐서 그런지 장단점이 있었습니다.
전자는 전술했던 이유들도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후자는 가끔 혼자 밥먹기가 어려운 경험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혼밥이 자연스러운 나라는 아니니까요.
나이 많은 사람 나이 어린 사람 편가르지 말고, 먹기 싫다는데 같이 먹자말고, 먹고 싶은 사람끼리 먹으면 안될까요? 요즘 우리나라 편가르기가 심한 것 같아요.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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